“강물에 띄운 게 아니라, 갈대 사이에 두었다고요?”
출애굽기 2장을 읽다 보면, 어쩐지 놓치기 쉬운 장면이 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가 아기를 갈대상자에 넣어 강에 띄운 게 아니라, 강가 갈대 사이에 두었다는 표현이죠. 히브리어 원문에서도 분명히 ‘두었다’(שׂוּם, sum)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그 장소였을까요? 그리고 바로 그때, 바로의 딸은 왜 강가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을까요?
이 짧은 구절 안에는 당시 이집트의 문화, 여성들의 일상,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섬세한 계획이 깃들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2:1-5
-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 갈대숲, 아기를 숨기기에 완벽한 장소
당시 모세가 태어난 시대는 히브리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나일강에 던져지던 암울한 시기였습니다(출 1:22). 그의 어머니는 갈대상자를 만들고, 역청과 나무진을 발라 방수 처리한 뒤, 갈대 사이에 조심스럽게 두었습니다.
강물 한가운데가 아니었습니다. 흘러가도록 띄운 것이 아니라, 바로의 딸이 자주 드나드는 장소, 누군가 발견할 가능성이 높은 자리, 갈대 사이에 ‘배치’된 것이었습니다.
믿음이 절박한 때일수록 지혜가 섬세해집니다.
🛁 고대 이집트의 목욕 문화와 왕족의 일상
출애굽기 2장 5절에 등장하는 장면은 참 흥미롭습니다.
“바로의 딸이 강으로 내려와 몸을 씻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청결이 곧 경건이었습니다. 고온다습한 기후 속에서 이집트인들은 하루에 여러 번 몸을 씻었으며, 향유나 향료, 기름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특히 나일강을 신으로 섬기는 이집트 사람들에게 왕족 여성들의 목욕은 단순한 위생 행위가 아니라 종교적인 정결 의식에 가까웠습니다.
때로는 신전 근처의 성수나 나일강을 이용해 목욕을 하며, 하녀들이 함께 동행해 의복을 갈아입히거나 기름을 바르는 장면도 있었지요.
바로의 딸이 강가에 나온 것도 이런 일상의 일부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녀는 단순히 몸을 씻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라, 정결의식이나 신성한 행위를 수행하러 나온 것이었을 수 있습니다.
🧡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타이밍
정결의식을 행하기 위해 나온 이집트 공주에게 강가의 아기 울음 소리는 그냥 지나칠수 없는 소리였습니다. 또한 공교롭게도 당시 이집트 공주라고 추정되는 (투트모세 1 친딸이였던 하셉수트(Hatshepsut)) 인물은 아들이 없었기에 모세의 울음소리는 신이 주신 아들이라고 느꼈을 가능성을 배제 할수 없습니다.
모든 히브리 아이들은 죽었지만 이 히브리 아이의 울음 소리는 그냥 지나칠수 없었지요.
왜 공주가 모세를 아들로 삼았을까에 대한 해석이 가능한 이야기 입니다.
“바로의 딸이 그를 자기 아들로 삼고...” (출애굽기 2:10)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이 능하더라.” (사도행전 7:22)
모세가 모세오경을 기록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뒷바침할수 있는 근거가 될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단순한 우연이었을까요?
👣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우리도 때로는 갈대상자에 우리의 소중한 것을 맡길 때가 있습니다. 아이의 미래, 가족의 문제, 내 인생의 한 조각을 놓아야 할 때.
그때 기억해야 합니다.
‘띄우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두는’ 것 입니다.
내 삶을 믿음으로 상자에 두는 것입니다.
마치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방주에 자신의 인생을 두었던 노아의 가족과 같은 겁니다.
하나님은 바로의 딸이 강가에 오는 시간까지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우리 인생의 타이밍, 만남, 자리 배치까지도 세밀하게 아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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